괴물.
"일단, 최동식이가 레노쎌을 인수할때 자금이 어디서 나온지나 알고 있나?"
A가 위스키잔을 입가에 가져가며 뱉은 말이다. 나는 그에 대꾸하지 않고 테이블의 담배를 한대 꺼내 피워물었다. A가 미간을 찌푸리며 위스키를 두어모금 마신뒤,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최동식이가 오일파크로 뻥카쳐서 모아놓은 200억을, 오일파크에 투자하지 않은 거지. 그간 유상증자다 뭐다 해놓은거 모조히 레노쎌에 몰빵으로 집어 넣은거지."
감사보고서가 들어온 것은 오늘 오전무렵이었다. 감사의견거절 공시가 뜬 순간부터 거래정지가 시작되었다. 사실상 상장폐지나 다름없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었다. 이미 재무재표상에서 자본잠식은 50% 수준을 넘어선 이상, 이 같은 상황은 예견된 수순과 절차를 밟아 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
뻔하디 뻔한 공시와 기사들, 그 숫한 찌라시에 개미들이 모여들고 그에 따라서 이어지는 것은 대주주매도. 그리고 연달아 나오는 증자, BW발행, 그리고 다시 찌라시 공시, 그리고 대주매도……. 물고 물리는 연속된 행태속에 남는 것은 개미들의 시퍼런 통장 잔고뿐이었다.
문제는 이같은 현상을 1년전부터 알아왔건만, 지금껏 여기에 매달려 있는 망령들이었다. 사실에야 그랬다. 코스피 200 안에 드는 기업이었건만, 이리도 쉽게 상장폐지라는 수순을 밟게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2,3일전에 모 애널리스트의 종목추천까지 있었던 판이건만,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될 줄이야. 물론, 그 멍청한 애널리스트의 짧은 안목에 떠밀려 온 개미들의 수준도 알만 했다.
"그래서 레노쎌에 대한 인수가는 정확히 해서 230억 정도 될거야. 그런데 레노쎌은 이미 인수할 기업이 정해져 있었어. 이미 260억에 크레슈와 인수계약이 체결된 상태였거든."
A는 과일 안주를 으적으적 씹어대며 말했다.
"근데 그 동네에 아주 걸물이 하나 있지. 이동찬이라고 사기꾼이 하나 있던거야. 그 녀석이 260억에 크레슈에게 넘긴게 아니라, 골때리게 230억에 최동식이 한테 넘겨버린거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야. 거기에 20억 위약금까지 물어주면서 왜 이동찬이가 굳이 최동식이한테 레노쎌을 넘긴걸까?"
광물자원테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가 많았다. 공인된 도박판인 증권시장에서, 그 중에서도 자원개발을 테마로 한 회사들은 그야말로 복권긁기와도 진배없었다.
여지껏 광물자원 관련한 회사중에 수익을 냈던 사례는 전무했고, 앞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개발과정에서의 광고하는 거액의 수익은 실현될 가능성도 낮으며, 산출방법도 상당히 비합리적이었다.
단적으로 최동식이 얼마전에 주주총회중에 내놓은 개발 현장 진척상황에 대한 보고서도 상당히 애매한 형식으로 발표를 하고 있었다. 개발 현장에 대한 전체 전경이나, 중요설비, 진척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부분들은 전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미 다른 회사들도 그랬다만, 자원개발과 관련해서 그럴듯한 공시가 쏟아져 나왔다만, 실제 사업성이나, 수익성에 대한 것들은 극히 일부수준 밖에 안되었다. 즉, 탐사결과가 성공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A는 내가 말 없이 담배를 태우고 있자, 이를 무시하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건 말이지. 최동식이한테 싸게 넘기는 조건으로 레노쎌의 자회사인 세넬기술을 이동찬이 먹기로 이면계약이 되어 있었던거지."
A는 말을 마치고 내게 담배 한 대를 달라고 말했다. 나는 테이블의 담배각을 그의 앞으로 밀어놓았고, A는 그 담배각을 받아서 담배를 한대 꺼내물었다. 나는 A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이후에 세넬기술에서 공장 매각 대금 100억원을 가지고 최동식이 BW를 인수하고 그 대가로 이동찬이에게 세넬기술 경영권을 넘겼지.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레노쎌의 알짜 기업인 세넬기술을 이동찬이 먹는 조건으로 레노쎌을 크레슈보다 30억 싸게 인수한 것이고, 이동찬은 손해를 보면서 세넬기술을 먹는 조건으로 싸게 넘기고 그 대가로 100억원의 BW까지 쏴준거지."
A는 재떨이에 반쯤 피운 담배를 비벼끄고서 탁한 가래침을 뱉었다.
"그리고 이동찬은 세넬기술을 먹자마자 바로 업자들을 동원해 22회차 BW를 돌린거지."
회사가 상장폐지에 이르자, 힘없는 개미들, 소액주주들은 당연히 난리도 아니었다. 감사를 단행한 회계법인까지 찾아가 난동을 부리기도 하고, 종목 추천을 한 애널리스트에게는 해당사이트가 마비될 정도로 비난일색들이었다. 시총 2000억의 주식이 한 순간에 휴지조각이 되는 판국에 어느 누가 가만히 있을 소냐.
"그러니까 레노쎌은 세넬기술을 날리고 껍데기만 남았고, 동찬이네 업자들도 이번에 작업하다가 이번에 된통 물린거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크레슈에 있지. 최동식이쪽에서는 일단 회사 물량 다 정리하고, 이동찬쪽 업자들과 조인트로 레노쎌 최대한 감자시키고, 크레슈에게 경영권 매각해서 우회상장하려고 했었는데 금감원에서 거래정지로 막아버리니 일이 커진거지. 크레슈는 우회 상장하겠다고 260억을 준비했는데, 계약 불이행으로 이동찬이에게 20억 받았으니, 총 280억의 현찰이 준비 된 상황이지."
난 내 앞의 위스키잔을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높은 도수의 알콜이 목구멍을 태우며 내려갔다. 화끈한 기운이 대번에 온 몸을 데웠다. 나는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입을 열었다.
"음. 그러니까 레노쎌을 통해서 우회 상장한다는 계획은 아직 유효하겠군. 동식이 생각으로는 크레슈가 2대 주주로 계속 남아서 우회상장을 포기 하지 않았으니, 레노쎌을 대강 20대 1정도로 감자시켜서 3자배정으로 크레슈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돈을 받을 생각이겠지. 그러니까 280억을 크레슈에게 받아서 자본잠식을 해결해보려 한 것인가?"
A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이어받았다.
"그래. 물론, 이번에 거래정지가 되지 않았더라면 하는 이야기지. 지금 최동식이쪽 사채 업자도 물린 상태고 동찬이네 사채업자도 대략 2,30억 물려 있는 상황일거야. 원래대로라면 주총 전까지 업자들 물량이랑, 이동찬이 물량 죄다 돌려야 정상인데 금감원에서 정지 때리는 바람에 난리도 아닌거지. "
나는 대답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다시금 담배를 피워물었다. 상장폐지……. 아마도 막을 수 없는 정해진 수순일 것이다. 소액주주모임을 결성해서 변호사를 선임하든 어찌하든간에 그네들은 돈과 시간을 허비하고 쓰러져갈테지. 아마, 그들은 그 소액주주모임을 이끄는 주체들도 의심해야 할 것이다. 최동식이의 측근에게로 정보가 세어들어가거나, 사측 임원들의 입김이 작용할 수도 있을테니.
역시나 문제의 핵심은 재무재표일 것이다. 최동식사장의 배임과 횡령을 숨긴 현재의 재무재표를 회계법인에서 믿을 수가 없을 테지. 그러니 회계법인에서 신뢰할 만한 재무재표를 다시 작성해서 제출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분식회계 및 자본 누락, 배임, 횡령등에 대한 비리가 드러날 것이다. 최동식은 당연히 그렇게 할리가 없겠지.
결국 소액주주들이 택해야 할 것은 그들의 지분을 모아서 임시주총에서 대표이사를 해임해서 새로운 대표를 들어 앉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존의 임원들을 고발하고 새로운 재무재표를 회계법인에 제출해서 재감사를 받으면 회생할 가능성이 그나마 높아질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이미 자본잠식률은 거의 100% 수렴할 것이기에 수백억에 달하는 자금을 새로 채워넣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갈데까지 가버린 회사에 수백억씩 자금을 쏟아부어봐야 나올 수익은 쥐꼬리도 없을 것이기에 그네들을 살려줄 마음착한 어리버리한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
천장의 미러볼이 정지해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그 속에서 여러 얼굴들을 보았다. 어떤 이들은 대학의 등록금일테고, 어떤 이들은 장미빛 미래를 보고 전 재산을 밀어넣은 이들이 있었겠지. 과연 그것들이 진실된 투자였을까? 아니면 투기였을까……. 아직 한강물이 차가울텐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문이 열리고 콜걸들이 방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 잠시 복잡한 생각은 접도록 하자. 정지해있던 미러볼도 그제야 돌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동창친구 A를 만난덕에 술자리는 제법 길어져서 집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새벽 네시가 넘어 있었다.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를 했다. 이번 거래정지 덕분에 상당한 손실이 있었다. 포트폴리오 중에 비중이 20%에 달했던 금액이었기에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hts를 켜고,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를 살폈다. 해외 주요지수들을 살피고, 전일 거래내역을 다시금 확인했다.
레노쎌은 모회사의 거래정지의 여파로 연일 하한가로 내리꽂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동찬의 작업으로 경영권을 빼앗긴 세넬기술은 3일 연속해서 상한가로 치솟는 중이었다. 얼빵한 개투들을 등쳐먹지 못하는 비상장회사들에 관심이 없었던 최동식은 세넬기술을 포함한 비상장 회사들을 이동찬에게 넘긴 덕에 레노쎌은 껍데기만 남은 회사가 되었다.
"…껍데기라……."
껍데기만 남은 회사 치고는 제법 오래 버티고 있다. 그것도 시간문제이긴 하다만.
담배를 한대 꺼내 피워물었다. 재무상 문제가 많은건 알았다만, 차트상 흐름에 잠시 자금을 투입했다가 바로 물렸으니 나도 문제가 많았다. 오일파크? 오일파크가 사실 성공적일리가 없었다. 그리 믿음이 강하다면 비상장인 상태에서 대박나길 기다리면 될 것이다.
아무래도 정리매매에 온 힘을 다 쏟아야 할 것 같다. 최소한 술값이라도 건져내야 할 판이다.
아마 이번달 중순즘 부터 정리매매가 시작된다고 하면, 시초가는 아마 50원 내외로 시작할 것이다.
주식수가 1억주에 자산총계가 250억정도면, 250원 나올 것이고……. 그런데 분기당 운영비가 60억씩 빠져나갔으니, 이미 한 분기가 지나갔다. 거기에 레노쎌의 상장폐지도 높아졌으니, 회사가치 50억가량이 또 빠져나간다. 거기에 상장폐지가 확정 되고 나면 남는 돈도 얼마 없을 것이다.
그렇게 시초가는 50원으로 책정이 된다 생각하면…….
아마 그렇다고 한들 정리매매 마지막 날에는 5원으로 마감될 것이다. 아마 최동식과 이동찬의 업자들도 상당수 물려있기에 그네들도 차비라도 건지려고 상당히 수를 쓸 것이다.
"팔아먹을 계열사도 이미 이동찬이가 다 챙겨갔고……. 최동식이도 오지게 뒷통수 맞았군. 빨리 사무실 찾아가서 돈 될만한 것들 챙겨야 하나? 모니터라도 챙겨야 할 판이군."
소액주주 모임들에도 한번 들러봤지만, 그네들은 이미 시작부터 글러먹었다. 이미 회사 문턱도 못넘는 주제에 뭘 어쩌겠는가? 각 신문사와 방송국, 거래소에 탄원서를 계속해서 뿌려대는 이들도 있었지만, 다 헛물이다. 그중에서는 야당의 국회의원에게까지 투서를 넣었다고 하는데, 정말로 미련한 짓이다.
상장폐지는 어떤 배경으로든 막을 수 없는 수순이다. 아마 그 투서를 받은 의원이 개입한다고 한다면, 각 보수적 신문사들이 달려들어 개같이 물어뜯을 것이 눈에 선했다. 아마 그 의원이 힘을 실어주기는 힘들 것이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것이 어께들좀 고용해서 사회적 이슈를 터트려야 할 것이다.
아마 주총이 열리기 전에 용역들을 불러서 깽판을 쳐야 가능성이 보인다. 낫이나, 쇠파이프 등으로 중 무장해서 주주총회에 쳐들어 간다. 그리고 방송 3사에서 취재에 나오면 이건 그나마 방송으로나마 알려질 것이다.
탄원서 수십만장을 돌려봐야 대표이사 배에 칼한 번 박는 것보다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이니깐.
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그나저나 니들도 참 답이 안나온다. 너무 이기적이야……. 다시 살린다 한들 너희들은 또 얼빵한 애들 꼬셔서 다시 물량 넘길거 아냐……. 되물림이야. 니들이나 최동식이나 오십보 백보라고. 얼빵한 애들한테 팔아먹는 순간 니들은 가해자가 되는거라고……."
최소한 상식선에서 생각을 해야한다. 상식선에서 말이다. 어차피 경제는 상식이다. 모든 것은 상식선에서 해결을 해야한다.
이런 사기꾼 집단을 다시 살린 다는 것은 상식선에서 어긋난다.
쌍용이나 금호같이 무너지면 10만명이 길거리에 나와 앉는 그런 케이스가 아니란 말이다. 그네들은 그 10만명의 일자리를 지킨다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명분이라도 있다만, 이 사기꾼들은 그런 명분이 있을까? 도의적으라도 살아남아봐야 민폐만 남는 그런 기업이 될 것이다. 돌아보더라도 11년동안 유상증자로 살아온 기업이다. 이미 여기까지 온것만으로도 기적이라 부를 수준이다.
그리고 상장폐지가 되면 이변이 없는 한 바로 부도처리가 될 것이다. 이후 모든 주주의 권리는 사라지고, 채권단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이다.
"남은 재산마저 최동식이 아가리로 넘어가겠구나……."
별 수 있나? 어차피 자본주의에서 기업이 부실하면, 그 책임은 주주가 지게 되어있다. 모든 것은 자기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다. 자기돈으로 투자했으니, 피눈물 흘리는 것도 자기몫이다. 그저 수업료 지불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참 좆같은 세상이야."
취기가 머리통을 찌르는 통에 살짝 비틀거리며 창가로 향했다. 창문을 열고, 찬바람을 쐬었다. 모두가 잠든 거리……. 그 지평선 너머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저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가 보인다. 표족하게 솓아오른 빌딩 숲 속으로 숨을 고르고 있는 무언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은가? 그것은 구부정하게 굽은 인간들의 피를 짜내어 생을 연명한다. 그 추한 삶을…….
괴물의 존재에 대한 구조적인 모순에 의문을 제기하려 한다면, 차라리 아메바가 되어 멍청하게 살아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런 속에서 생각만 복잡해질수록 더 빨리 죽는다.
그 구조적인 모순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었지만 그들의 삶은 참으로 비참했다. 물론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 없이 사는 삶은 거세된 것이나 다름이 없지만…….
오늘도 괴물은 누군가의 피를 탐하며, 그 탐욕스러운 웃음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 예외는 아니겠지…….
그렇게 시퍼런 새벽은 길게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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